[스테인덱] 요네즈켄시 춘뢰_쿠모님
너의 계절은 순간마다 찬란했다. 마치 어느 날의 낙뢰처럼 별안간 눈앞에 나타나 버린 너를 나는 하릴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언젠가 분명 손가락 끝까지 전류가 흘러 온몸이 갈가리 찢길 것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라는 사람은 그저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
“으음.”
작은 입을 비죽 내밀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불만의 표시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저 귀여워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기분이 좋아 보이지를 않는다. 스테일은 모른 체 속으로 숨을 뱉었다. 뙤약볕이 한창 내리쬐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발끝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수녀복을 입은 소녀는 큼지막한 가로수 아래의 그늘에서 그와 함께 몸을 맡기는 중이었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저마다 더위를 식힐 무언가를 가지고 다니는 폼이 완연한 여름이 왔음을 두 명에게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준다. 열기 탓에 더운 숨을 한 번 뱉은 소녀는 땀과 함께 피부에 달라붙은 자신의 은발 몇 가닥을 떼어내 뒤로 넘기며 행인들이 들고 있는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볼 때마다 입을 작게 우물거렸다. 왜 나는 저런 것도 못 먹고 여기 있느냐는 작은 불평이기도 했고, 평소라면 금방이라도 옆 사람에게 같이 먹으러 가자며 매달렸을 소녀의 채 숨기지 못한 습관이기도 했다. 적어도 칸자키라면 나았을까. 스테일은 매미 소리가 그득 들어찬 묘한 정적 속에서 애먼 제 동료나 찾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애초에 스테일이 학원도시를 방문한 이유는 자신 옆의 소녀나 소녀가 함께하고 있는 카미조 토우마라는 소년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저 정기적인 관찰이나 으레 하고는 했던 정보 교환을 위해서 왔던 것뿐이었는데. 길거리에서 갑작스레 두 명을 마주친 것도 모자라 그사이에 뭔가 일이 터져버린 것인지 카미조는 자신의 불행이나 외쳐대며 소녀를 스테일에게 잠시 부탁하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마녀사냥의 왕을 불러내고 싶었으나 그에게 통할 짓도 아니었고, 소녀에게 일부러 보여줄 모습도 아니었던지라 스테일은 그저 옆에서 멀대처럼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은발의 수녀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열여섯 번째쯤 움찔거리는 순간이었다. 스테일이 들리라는 듯이 한숨을 쉬고서 자신의 붉은 머리를 성의 없이 헤집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속으로 열여섯 번째쯤 계산해본 후에 나온 행동이었다. 평소답게 하자, 평소답게. 스테일은 자신의 심박이 오르는 것을 체감하며 겨우 입을 뗐다.
“그런 표정 짓고 있어 봤자 소용없어. 카미조 토우마가 나한테 너를 부탁한 것이니 별수 없잖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을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대여도 대꾸는 해주는구나. 스테일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썩 좋은 말투로 말한 것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똑바로 대답해준 덕분에 스테일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아니 물론, 그 언제나처럼 이라는 것이 옛날의 그때는 아니겠다만. 짧은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한번 말문을 연 스테일이 흐름을 타고서 소녀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뭐… 이렇게 길 한복판에 서 있어봤자 별것도 없을거고. 시원한 것이라도 먹겠어?”
눈치는 봤다. 그야 자신 옆에 서 있는 소녀가 자신을 별로 달갑지 않아 한다는 사실은 스테일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땡볕에 소녀를 세워두는 것 자체가 스테일에게 있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말을 한참이나 뱅뱅 돌리고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괜히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수많은 반지 중 하나를 슬쩍 건드리며 제자리 돌림 하는 순간이 지나갔다.
“그럼 아이스크림으로. …고마워.”
안심하는 동시에 입안에서 괜찮다는 말만 헛돌고 정작 나오지는 않았다. 먹을 것 앞에서는 도통 종교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소녀를 향해 그러느냐는 듯 일부러 대충 어깨만 으쓱하고는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룬문자와 불을 다루는 천재 마술사, 스테일 마그누스. 업계에서야 무서운 이명으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저 뒤에서 들리는 작은 발소리에 비실거리는 입가를 누르는 소년에 불과했다. 여름 냄새가 녹빛처럼 푸르다.
*
녹색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꼭 보석 같다. 스테일은 맞은 편에 앉아서 종류별로 조금씩 퍼담은 작은 아이스크림 컵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소녀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두 명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넓은 공원의 그늘 아래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절에 맞춰 영업을 개시한 아이스크림 트럭 덕분에 두 명은 얼마 걷지 않고도 한결 수월하게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얻어낼 수 있었다. 물론 계산은 아까 허겁지겁 달려가 버린 카미조에게서 우연히 떨어져 버려 회수해뒀던 지갑을 써먹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스테일은 타인, 그중에서도 특히나 카미조 토우마에게는 가차없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갑 생각은 깨끗하게 지우고 스테일은 계속해서 안 그런 척 소녀를 살피고 있었다. 양 손에 플라스틱 숟가락을 야무지게 들고 있는 것이 곧 아이스크림과의 전투를 시작할 태세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아이스크림을 향해 달려들지는 않는 모양새가 영 어정쩡해 보인다. 스테일은 고개를 기울이고 말을 붙인다.
“왜 그러지? 먹지 않고.”
물어오는 소리에 소녀가 아이스크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스테일을 쳐다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흘긋 넘겨보듯 살피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스테일은 순간 피하려다가 간신히 마주 봤다. 잠깐의 정적도 잠시, 무어라 말을 할까 고르는지 입안에서 소리를 우물거리던 소녀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당연한 듯이 물어본다.
“당신은 먹지 않아?”
“…아, 그렇군. 나는 아이스크림보다는 이쪽이 더 나아서 말이야. 잠시 실례하지.”`
스테일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하고서는 품 안에서 담뱃갑을 보여주듯이 꺼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전에 카미조 토우마와 소녀를 만난 후로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골초인 스테일로서는 조금 조급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제 눈앞의 소녀는 자신의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소녀가 뭐라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빠르게 테이블을 벗어난 스테일은 공원에서도 사람들의 눈이 적게 닿는 외진 곳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들고있던 담뱃갑을 다시 품속으로 쑤셔 넣는다. 애초부터 담배를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공원이라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에 담배 냄새가 잔뜩 밴 상태로 다시 돌아갈 생각 자체가 없던 까닭이다. 그야 약간 초조한 것은 사실이겠다만 그게 니코틴 탓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스테일은 그조차도 헷갈려 하고 있었다. 주변을 살핀 스테일은 마지막으로 소녀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이제야 양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것만큼은 보였기에 스테일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곤란하다. 이래서야, 곤란하다. 스테일은 자신의 호흡이 불규칙해진 것을 늦게나마 눈치채고서 입술을 씹었다. 분한 것은 아니다. 그쯤은 당연하다. 히어로는 소녀를 구해냈고 자신은 하지 못했다. 그 간단한 결말에서 도출되는 결과들이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그런 일들이 있었어도 스테일이 하는 일은 하나 변하지 않는다. 소녀를 지키는 것.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할 맹세. 다만 스테일은, 조금. 버거웠다. 감정이란 불꽃과도 같아서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맘 놓고 있다가는 온몸에 옮겨붙기에 십상이다. 불의 마술사는 그 간단한 이치를 전부 불타기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벼락이라도 떨어져 불타기 시작한 벚나무 같았다. 도저히 이 화마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부러 이름 하나 부르려고도,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네세사리우스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 십만 삼천 권의 마도서를 기억하고 있는 완전기억능력자. 마치 저 같은 하얀 수녀복을 입은 수녀. 샛별 같은 은발과 여름같이 푸른 녹안을 가진 소녀. 휘어지는 눈꼬리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 인덱스. 인덱스, 인덱스. 아마도 스테일은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 끝까지 인덱스라는 이름을 되풀이할 터다. 그리고 그 기억은 최후의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인덱스. 스테일은 더운 열기에 차 부옇게 보이는 하얀 인영을 보여 속으로만 불렀다. 또 그렇게 속으로만.
나는 또 낙뢰처럼 떨어져 내리는 너에게 갈가리 찢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