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미요시 / 장마_쿠모님]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점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는 벌써 사흘째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장마철이니 별수 없다 싶으면서도 전신에 스며드는 축축한 감각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천하의 학원도시여도 자연에는 어쩔 수가 없구나. 요시카와는 별것 없는 골목 앞에 서서 멍한 표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거리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버려진 쓰레기 하나 없었으나 인적이 드문 골목 같은 곳까지는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린 모양인지 군데군데 파여있는 콘크리트 땅이나 잡다한 쓰레기가 널려있다. 요시카와는 밖에서 들이친 빗물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우산 손잡이를 다시금 고쳐 쥐고 골목 안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첨벙. 둔한 물소리에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제 발이 물웅덩이에 발을 적시고 있었다. 이런, 느릿하게 중얼거리고는 내디뎠던 발을 뒤로 물렸다. 척척한 감각으로 미루어보아 분명 양말까지 젖었을 터다. 발가락 사이까지 감싸오는 불쾌한 감각에도 요시카와는 특별히 얼굴을 구기지 않고 눈만 몇 번 깜빡였다. 하얀 운동화에 적셔진 빗물은 탁해 보이기는 해도 별달리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조사해보면 사람에게 좋지 않을 만한 먼지나 기타 성분들이 섞여 있겠다만, 눈으로 봤을 때는 그저 물빛으로만 보였다는 의미다. 정말 아무것도 안 남아있구나. 순간 목구멍까지 빗물이 차오르는 기분에 휩싸인 요시카와가 헛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돌렸다.
요시카와? 익숙한 목소리가 비 사이를 뚫고 내려온 것도 동시였다. 요시카와는 재깍 고개를 돌려 상대를 쳐다봤다. 그 치고는 날렵한 행동이었는지 말을 건 상대도 잠시간 당황한 듯 보였다. 놀란 표정도 잠시, 요시카와임을 확인한 상대가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성큼 다가와 입을 연다.
“요시카와! 오랜만이잖아.”
“…요미카와.”
나직하게 제 이름을 부르자 안녕, 하고 가볍게 손을 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난 지 퍽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시간은 없었던 양 친근하게 구는 모습에는 신기하게도 불쾌한 구석이 없다. 그런 점이 그녀다운 것이라고, 요시카와는 내심 짐작했다. 요미카와 아이호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만한 교사였다. 동시에 안티스킬이기도 했고. 지금도 이렇게 헐렁한 초록색 체육복을 단출히 걸치고 있지만, 어른이며 교사이자 안티스킬로서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을 터다. 표정이나 자세에서부터 묻어나오는 강인함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강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상냥한 사람이다. 요시카와는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듯한 그가 좋았다. 비록 그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의 무른 점이 더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무슨 일 있어? 이런 곳에서 혼자 멍하니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요미카와가 요시카와의 어깨너머로 펼쳐져 있는 골목길 풍경을 넘겨보며 슬쩍 말을 건넸다. 그게. 요시카와는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다시 한 번 골목 안쪽으로 고개를 돌려 들여다본다. 빗줄기 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서로 울려대는 탓에 골목 안쪽에만 비가 더 거세게 내리는 기분이 든다. 밤에는 더 어두웠겠지. 빛조차 들지 않았을 테지. 요시카와는 잠시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요미카와에게 느릿하게 부탁의 말을 건넨다.
“양말 좀 빌려줄래.”
어젯밤에는 이 골목에서 그녀가 참가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만 몇 번째 실험이 있었더랬다.
*
나는 네가 교사를 할 줄 알았어. 요미카와가 방금 내린 커피가 담긴 컵을 건네며 가볍게 운을 뗐다. 요시카와는 커피잔을 받아들며 옛날을 회상했다. 분명 그런 직업을 꿈꿨던 때도 있었다.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하며 가르쳐주고, 함께 배워나가고. 모두가 힘을 합친 대패성제에서는 그만 울음을 터트려서 도리어 위로받고 마는. 그런 부드러운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언제쯤이었을까, 자신이 그런 장면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요시카와는 마른 웃음이나 지으며 대답했다.
“되고는 싶었지만, 나는 교사라는 직업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뒀어.”
“그래? 나는 딱 맞을 거로 생각했는데.”
요시카와는 약간 고개를 기울이고 말았다. 본인조차 고민하고 결국에는 놓아버린 일을 만난 지조차 오래된 요미카와가 어째서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컵을 쥐여주고 자신 몫의 잔을 쥔 채로 맞은편의 의자를 빼내어 앉는 요미카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실, 그와의 만남은 일부러 피하고 있던 참이었다. 함께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애달은 감정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요시카와는 자신을 애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처럼 착하지도, 굳세지도, 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다고. 무른 사람이 저렇게 올곧은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신을 맡기고 싶을 때가 온다. 요시카와는 그 부분을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요시카와 본인으로서도, 과학자로서도 하면 안 되는 금기였다. 물론 지금 맡은 프로젝트 덕분에 그 앞에 낯짝 좋게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은근히 피해 다니던 요미카와에게 왜 양말이나 빌려달라는 시답잖은 말을 꺼낸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다. 요시카와는 목말라 있는 상태였다. 장맛비를 달게 마시는 여름날의 흙바닥 아래에서 숨 쉬고 있던 초목처럼.
“요미카와.”
응? 컵에 담긴 커피를 후 불어 하얀 김을 걷어내던 요미카와가 부름에 따라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편한 자세를 잡고 있지만 마치 요시카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반응이다. 요시카와는 속으로 숨을 조금 들이켜고서야 뒤를 이어 말할 수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상냥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상냥하다기보다는… 무른 사람이니까. 다양하고 많은 학생을 상대로 일하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요시카와, 너는 상냥한 사람이잖아.”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한다. 요시카와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요미카와를 바라보며 아연한 기분이 났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나의 상냥함을 이렇게까지 긍정할까. 요시카와는 드물게도 제 입술을 짓씹었다. 그렇다. 이 사람은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저가 얼마나 무르고, 약하고, 비겁한지. 방금까지 골목 앞에서 하고 있던 짓이 무슨 짓인지, 요미카와는 전혀 모르니까 이렇게 다감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거다. 요시카와는 초조해진 마음에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야, 요미카와. 나는, 나는….”
두어 번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어붙이려 한 것과 요미카와에게서 전자기기의 신호음이 나온 것은 동시였다. 평범한 핸드폰 벨소리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거로 미루어보았을 때, 아마도 안티스킬들이 사용하는 호출기라도 될 터다. 요시카와의 짐작이 맞았는지 제 전자기기를 살펴보는 요미카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잠깐의 정적 사이로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빗소리만 울리고 있다. 그 무음을 먼저 깬 쪽은 요시카와였다.
“미안. 내가 바쁜 사람 잡았나 봐. 양말도 빌렸겠다, 신발도 얼추 말랐을 테니까 난 그만 돌아갈게. 오늘 고마웠어, 요미카와.”
요시카와쪽으로 고개를 든 요미카와가 잠깐, 소리를 내었지만 요시카와는 손사래를 하면서 다급히 현관 쪽으로 걸어나갔다. 거의 도망치는 듯한 행동거지였으나 별수 없었다. 요미카와 것의 양말을 신은 체로 채 마르지도 않은 하얀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깨끗한 양말이 다시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한쪽에 세워둔 우산을 집어 들고서 요시카와는 고개를 돌렸다. 잰걸음으로 따라온 요미카와가 앞에 서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 진지한 낯빛이었다. 방금 받은 호출 때문인지, 말을 하려다가 삼켜버린 제 탓인지 요시카와는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만나자.”
“그래, 그러자. 조심히 가.”
현관문을 열며 다급하게 건네는 인사치레에 요미카와는 금방 눈썹을 올리며 밝게 인사했다. 처벅, 처벅. 닫힌 현관문을 뒤로하고 요시카와는 빠르게 젖은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호출을 받은 사람이니 언제 다시 집을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곁눈질한 하늘은 아직도 우중충하기만 하다. 비가 언제까지 온다고 했더라. 요시카와는 속으로 쓸데없는 계산을 해보며 생각을 전환해보려 했다. 그러다가 일순 웃음이 삐져나왔다. 자조였다. 나는 항상 그렇지. 소중한 것은 많지만 잡을 용기는 없다.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또 이렇게. 요시카와는 요미카와에게 해야만 했던 말을 혼자서나 중얼거렸다.
나는 어젯밤 죽어버린 한 아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무른 사람은 무른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