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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통행 / 열기_쿠즈님]

뜨거운 공기, 질척이는 땀과 젖은 옷의 끈적임까지도. 이런 불쾌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나 쾌적한 환경에 속하는 요미카와의 맨션에서 액셀러레이터는 소파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살폿, 바닥을 밟으며 그녀는 그가 기대어 누워 있는 소파의 등받이 뒤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당사자가 알게 된다면 심히 불쾌해 할 정도의 속셈을 마음 속에 품고선, 소파의 뒤에서 허리를 살짝 숙였다.

 

허리를 굽히자마자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은 베일과도 같은 흰 머리칼로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얼굴과 길고 흰 속눈썹. 하지만 그것마저도 흰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더위를 먹은 탓일까, 그녀는 홀린듯이 설원처럼 흰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하나 둘 헤집는다. 이리저리 헤집어버린 머리카락이 소파의 등받이 위로 흐트러지자 미형의 얼굴이 확연히 드러났다. 뚜렷한 이목구비, 날렵한 턱선, 흰 피부. 홀로 눈 밭에 파묻힌 양 그의 모든 것이 이 곳에 떠도는 강렬하고 뜨거운 열기와 대조되었다. 기분 나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각도 하지 못한채 그녀는 부랴부랴 잠들어 있는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미사카 워스트. 학원도시 제 3위-레일건-의 클론으로, 서드시즌 당시 시스터즈의 최종 루트로써 제작된, 특별히 '악감정'만을 추출해 만들어진 개체가 바로 이 미사카였다. 액셀러레이터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부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러시아로 투입되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은 그 목적의 대상이 될 터인 액셀러레이터와 동행중이다.

 

자그마한 발로 마루의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던 라스트 오더는 문득 그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것인지 궁금해져 휘잉- 팔을 돌려대며 소파의 뒤로 향했다.

 

 

"지금 뭐하는거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물어보기도 하고."

"쉬잇."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쨍쨍한 햇빛이 몸 속으로 스며 들어오는게 느껴지자 덩달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들의 시선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중얼중얼. 하고 속삭이는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슬며시 뒤로 젖혀보니 역시나 그곳에는 단잠을 방해하는 꼬맹이들이 서있었다.

 

고개를 슬며시 젖힌 그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반 쯤 감긴 눈동자에는 붉은 피웅덩이가 비추어 마치 살기가 어린듯한 눈빛을 형성시켰다.

 

 

"히익! 갑자기 드러내기 시작한 살기에 미사카는 미사카는 온 몸을 부르르 떨어보기도 하고!"

"그러게! 미사카도 무서워서 치가 떨리는데!"

 

 

 둘이 언제부터 그리 사이가 좋았다고. 서로를 꽈악 부둥켜 안고는 장난스레 바들바들 떠는 모습에-라스트 오더는 진심으로 무서워 하는듯 했지만-액셀러레이터는 짧게 한숨을 쉬곤 얇디 얇은 팔로 몸을 지탱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눈동자의 시선이 떨어진것을 느꼈는지 미사카 워스트는 부둥켜 안고 있던 라스트 오더를 내팽겨 치듯 바닥에 내려놓곤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아! 기다려!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소리쳐 보기도 하고~!"

 

 

 온 집안에 울려퍼질 정도로 높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고함을 쳤다. 액셀러레이터는 일어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잠긴 목이 풀리지 않았는지 약간의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찮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의견을 주장하는 라스트 오더의 앞에서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워스트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액셀러레이터의 고개가 정면을 향함과 동시에 연달아 움찔했다. 잘못한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어째서일까, 심장 한 켠이 조금씩 아려오기 시작했다.

 

 

"우, 미사카도 궁금하다고! 라며 미사카는 미사카는 자신에게도 액셀러레이터에게 대화를 신청할 권리를 달라며 당당히 요청해본다!"

 

 

자신만 외야로 빠져있는 것이 꽤나 억울하고 기분 나빴는지 라스트 오더는 그의 허리에 두 팔을 휘감고 생떼를 부렸다. 워스트는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사나운 눈매, 거친 말투. 평소의 행동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뭐지?

 

그대로 벙쩌있던 워스트를 놔둔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을 짓는다. 그걸 본 그녀는 잠시 또 주저하다 다시금 그의 표정을 주시하며 너절하다는 듯이 실컷 비웃어 주었다.

 

그가 무반응으로 차갑게 대한 탓일까. 예상대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라스트 오더는 온데간데 없고, 이내 오전에 안티스킬의 잔업처리를 한다며 외출한 요미카와를 마중 나간다며 분주한 상태가 되어버린 그녀였다. 다녀올게! 라고 외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고단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맨션의 분위기를 전환시켜주고 활력소가 되어주는 아이가 외출해 버리자 결국 거실은 미세하게 떨리는 숨소리와 서로 의도치 않게 주고 받고 있는 눈빛, 그리고 워스트의 멈추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는 빤히 워스트를 주시했다. 뚫어질 정도로 마주친 붉은 눈과 제 갈색 빛의 눈이 함께 공명하는듯 해, 워스트는 속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부서져간다.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 손가락을 튕긴다. 튕긴 손가락이 다시 캔커피의 밑동을 지탱시키자 입구 부근에 맺혀있던 내용물들이 튀었다. 개의치 않고 발길을 옮겨 그가 향하는곳은 베란다였다.

 

워스트는 고개를 다시금 꼿꼿이 들고 그의 상체부터 시작해 몸을 밀착시키곤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자존심 회복이니 뭐니, 그런 시시한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니었다. 그저 이 견딜 수 없는 분위기를 타개할만한 방법이 평소처럼 자연스레 행동하는 것이었을 뿐.

 

 

"아버님 어딜 가려고~? 설마 미사카와 단 둘이 실내 데이트를 하고 싶다던가.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더운 날씨에 바깥에 나가는건 아버님에겐 자살 행위에 가까우니까. 푸흡, 그렇지 않아?"

 

"그대로 뒤로 돌아서 거실에서 꼬맹이가 그리 좋아하는 채널이라도 돌려보는 건?"

 

"이 미사카가 그럴 리 없잖아. 언니처럼 그런 시시하고 유치한 프로그램을 보며 기뻐하는 꼬맹이인 것도 아니고~"

 

 

워스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흘려듣다 그는 고개를 휘익 돌렸다. 그대로 문고리를 잡곤 그대로 팔을 주욱 밀어당겼다. 뜨거운 열기가 실내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워스트는 눈을 찡그린다. 밀려들어온 열기는 전신을 휘감았고, 산란하는 오후 6시 경의 태양빛은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았다. 그런, 그러한 아름다운 것들을 등지고 선 그의 조각같은 얼굴에 서려있는 표정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미사카, 더위를 제대로 먹은것 같네.'

 

 

저 ‘얼굴’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될 줄이야. 워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액셀러레이터를 향해 보이고 있는 이 지대한 관심이 과연 더위를 먹은 탓에, 그 많은 열기를 한 번에 들이 마쉰 탓에 그런걸까?

파고 들어가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더 이상의 의문은 갖지 않기로 했다.

"매정하기는~ 역시 아버님 본성이 뒷받침 되어주지 않으니까 언니에게도 저렇게 대하는거지~"

그녀의 조롱에도 개의치 않고 그는 곧장 직진했다. 파삭, 워스트의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가 그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부서지고 있었다. 아까 결심했잖아, 신경쓰지 말자. 생각하며 그녀는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무작정 따라나온 탓인지, 캔커피라도 손에 쥐고 있는 액셀러레이터에 비하여 워스트는 사복 아오자이 차림으로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채 한 구석에 방치된듯 했다. 심기에 거슬렸는지 그는 캔커피를 입에서 떼고 말한다.

 

 

“할 말이 있어서 따라나온거 아니야?"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열기가 뿜어내는 분위기에 홀리기라도 해 따라온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이 미사카는-

 

 

"아니, 아버님한테 할 말은 없으니까.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마"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듯이 그는 다시 캔커피를 가볍게 흔든다.

 

 

"...애초에 네 놈에겐 기대하지 않는다고."

 

"......"

 

"아무것도."

 

 

분명히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할... 이야기 라는건..."

 

 

너무 강렬한 열기 때문인걸까. 점점 머리속이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하고 이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무슨 행동을 하려고 했는지 조차도 뒤죽박죽 섞여버리고 만다. 시야도 흐려지며 귓바퀴 주변이 노이즈로 가득찬다. 답답한 가슴 한 구석에 맺힌 응어리도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훅, 갑작스레 바닥을 향하는 안면. 캔커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가 웅웅- 하고 귓가에 고요하게 울려퍼진다.
 

깜빡. 눈을 잔뜩 쏘이는 눈부신 전등탓에 아직도 베란다의 한 켠에 잠자코 서있는걸까, 지금 느껴지는 이 온기는 몸안으로 스며든 햇빛인걸까. 하고 착각할뻔 했다. 눈을 뜨자마자 비치는건 이미 시야의 안에서 익숙해져 버린 흰 천장. 그리고 두번째로 비치는것은 침식된 붉은 눈동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침대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날 정도로 요란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도 덩달아 놀란건지 토끼눈을 지으며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선다.

 

 

“열기가 너무 강해서 쓰러진건가? 미사카도 정말 꼴불견이네...누구님이랑 같은 포지션인걸까...”

 

“멍청하긴. 아침부터 미열이 있었어. 전혀 눈치 채지 못한거냐?”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문이 막혀버리자 워스트는 조금 뚱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의 시트를 움켜잡았다. 조롱하지 못해서 답답한게 아니다. 그는 선반위에 올려져 있는 약봉지를 탁탁 털곤 그대로 약병에 쏟아넣으며 중얼거렸다.

 

 

“쯧. 스스로 몸상태 하나 관리 못하는 놈에게 난 뭘...”

 

“아버님, 뭐라고?”

 

“알 필요 없어."

 

 

자, 이거. 잔뜩 흔들어 내부가 내용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약병을 내민 그는 어째서인지 빠르게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워스트가 약을 들이켜 마시는걸 똑똑히 지켜본 그는 워스트가 다시 선반에 약병을 내려 놓자마자 아까부터 조금 붕 떠있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움직이던 다리가 의자의 다리와 함께 부딪히자 그는 윽, 하고 얕게 신음했다.

 

뒤늦게 무거워진 몸에 다시 누우려던 찰나 무언가 요란히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픈 몸이 무색하게 그녀는 상체를 급히 일으켜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쓰러진 의자, 넘어져 있는 아버님. 상황이 대충 짐작가자 워스트는 푸흡, 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그의 손이 바닥에 닿은 채로 부들부들 떨려대자 워스트는 나름대로의 위협을 느꼈는지 웃던 것을 멈추고 신속히 의자를 주우려 했다.

 

마지막 일말의 자존심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은걸까. 그는 전력을 다해 워스트가 뻗은 그 손을 잡아당겼다. 금방이라도 탈진해 버릴듯이 뜨겁고, 그에 비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두 손이 맞닿자 손가락 사이 사이로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이 사랑스러웠다.

 

‘지금 이게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워스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되내이고 있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가뜩이나 상기되어 있던 볼이 더욱 붉어져 터져버릴듯 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피할 생각 따윈 없다. 다시 한 번 그 눈동자를 바라보자 그 색은 더 이상 핏물에 잠겨버린 붉은 빛깔이 아니었다.

 

그는 맞잡고 있던 손가락을 하나, 둘 부드럽게 풀어헤치고는 따듯해진 손바닥을 그녀의 상기된 볼에 가져다 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공명하던 서로의 눈이, 이제서야 제 갈 곳을 찾은듯 깊이 빠져들어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과연 어디까지 빠져들어 간걸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 볼에 닿아있는 그 손이 너무나 따듯해서, 이대로 떼고 싶지 않다고. 미사카 워스트는 생각했다.

 

여름은 발돋움의 계절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미사카 워스트는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더불어, 이 사랑스러운 공간에서 더 이상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치이- 버스의 문이 열리며 자매중 언니 쪽이 되는 것 같은 외관의 여성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었다. 일어나, 벌써 종점이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말해보기도 하고! 앗, 액셀러레이터어!! 크게 소리치는 아이의 목소리에 그녀는 살며시 눈을 뜬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차창 밖의 하얀 머리의 소년도 부드러운 열기에 몸을 실으며 몸을 버스 쪽으로 향해 돌렸다.

 

워스트는 차창밖에 서있는 그를 보고는 잠시 멍하게, 아니 뚫어지게 창 밖을 주시했다.

 

주시한 그 곳에는 드물게도 창 밖에 보이는 액셀러레이터가 그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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