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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치카미 / 풍경_N9님]

풍경을 달았다.

 

카미조 토우마는 선천적으로 불행하다. 그런 그가 마트에서 진행하는 추첨에 싸구려 풍경이 경품으로 당첨된 것이다. 물론 뒤에서 숫자를 세는 게 더 빠른 순위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휴대용 티슈가 당첨되지 않은 것 만으로도 매우 기쁜 일이었다. 작년 여름에 이탈리아로 여행권이 당첨 된 적이 있었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던 모양이고, 해외 관광은 해보지도 못한 채 학원도시로 돌아왔어야만 했다.

그 때가 떠오르자 카미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학원도시의 초음속 비행기는, 두 번-아니 세 번 다시 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더 이상 탈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났고, 이제 카미조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작년에 비하면 평화로운 편이었다.

 

평화.

더운 바람에도 흔들려 울리는 풍경소리는 사람을 느긋하게 만들었다. 경품으로 당첨된 풍경은 어쩐지 일본에서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풍경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경쾌했다. 카미조는 싸구려라 그런가보다 하고 발코니에 풍경을 달았다.

 

오늘도 카미조는 여유롭게 풍경소리를 들으며 여름방학 숙제를 할 예정이었다.

 

“여어- 카미양.”

 

저 빌어먹을 금발 선글라스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다.

카미조는 열었던 현관문을 천천히 닫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환상이라 믿었던 츠치미카도는 여전히 카미조의 침대위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옆집 사는 이중스파이씨가 우리 집에 쳐들어 온 건에 대하여.”

 

“라이트노벨 제목으로 정리하는 거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거야?”

 

카미조가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갔다. 침대위의 츠치미카도가 겁이라도 먹은 듯 움츠렸지만 녀석이 겁을 먹을 리가 있나. 츠치미카도는 곧 우스꽝스럽게 아잉~소리를 내며 카미조를 놀려댔다. 카미조가 에잇,하고 가방으로 녀석의 머리를 내려쳤다.

 

“오늘도 어째 불행하구만-...... 어떻게 들어와 있는거야? 스페어키는 내가 빼앗아갔는데.”

 

“후후. 카미양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츠치미카도가 자신의 교복 상의에서 열쇠하나를 꺼내들었다.

 

“스페어 키는 거푸집이 있다면 언제든지 복사 가능☆.”

 

카미조가 질색하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번 것도 빼앗아 봤자 또 복사하겠거니 싶어, 빼앗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츠치미카도가 자신의 집에 쳐들어 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으응-?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냥-?”

 

그럴 리가. 카미조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15년같은 5개월을(그리고 그 중 하루는 10032번하고도 몇 번씩이나 죽었다) 보내고 나서도 힘든 나날이 계속 되었었다. 카미조는 지금처럼 평화로운 나날이 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츠치미카도가 웃었다.

 

“카미양이 요즘 외로워 하는게 보여서 말이지-. 금서목록이 잠시 영국에 갔다는 얘길 들었거든-.”

 

“항상 집에 있던 인덱스가 없으니까 좀 외롭긴한데. 그 녀석도 그 녀석 나름대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까 말야.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리고 인덱스는 내가 학교 간 사이에 항상 이렇게 외로워했을거잖아.”

 

게다가 그의 이해자인 오티누스까지 영국으로 갔다. 그녀는 끝까지 가지 않으려고 카미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청교도 측에서는 그녀의 지식도 필요하다며 반드시 와달라고 요청한 모양이었다. 카미조씨는 보충수업을 핑계로, 인덱스를 데리러온 스테일의 손에 오티누스를 넣은 작은 주머니를 건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학원도시의 초음속 비행기는, 두 번-아니 세 번 다시 타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한동안 카미조는 혼자였다. 기억을 잃은 뒤로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카미조였기에, 더욱 쓸쓸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너, 마이카는 어쩌고?”

 

“마이카는 토키와다이 대청소에 불려갔다냥-.”

 

아무래도 녀석도 외로웠던 모양이다.

발코니의 창은 열어뒀지만 방 안은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더웠다. 평소라면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틀어재꼈을 녀석은 그저 땀을 흘리며 침대 시트위에 누워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카미조가 상체를 벌떡 세우며 신경질을 냈다.

 

“뭐야. 침대 시트가 네 땀으로 범벅이잖아. 그냥 평소처럼 에어컨을 틀고 있던가.”

 

“그치만 카미양-. 풍경을 달았잖아? 풍경소리를 들으려면 창문을 열어야한다냥. 여름엔 이래야지.”

 

아아. 카미조의 시선이 풍경으로 옮겨갔다. 바람 한 점 없이, 풍경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왠일로 풍경을 달았대-? 우리 집에서도 소리가 들리더라냥-. 그래서 살펴보려고 들어왔다가 그만 눌러붙어버린거 있지.”

 

“아아, 경품에 당첨되어서. 싸구려지만 그래도 소리가 괜찮지않아? 여름하면 풍경이고.”

 

“그렇구만-. 그렇지, 그렇지. 여름하면 풍경이다냥-.”

 

마침 타이밍 좋게 바람이 불어왔다. 건물의 숲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여름의 바람은 뜨거웠지만, 그래도 반갑기도 했다. 풍경이 딸그랑 하고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뜨거운 바람이라도, 땀을 식히기에는 괜찮은 정도였다.

 

“카미양, 카미양. 풍경은 불교와 함께 전해져 사찰의 귀퉁이에 걸어 두었던 액막이라고 해-. 어쩌면 카미양의 불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지도 모르겠네-.”

 

“액막이~? 그런가~. 그랬으면 좋겠네......”

 

카미조가 침대 옆면에 등을 기대고 머리를 침대 시트위에 얹었다. 발코니 너머의 푸른 하늘이 시야에 가득 찼다. 비행기가 지나가며 구름 한점 없던 하늘을 가로지르며 하얀 선을 그었다.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카미조는 잠깐 졸았을지도 모르겠다. 잠결에 츠치미카도의 손 끝이 카미조의 머리에 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비행운이 서서히 옅어질 즈음, 여름의 열기가 어느 정도 흩어졌다. 카미조가 츠치미카도가 있는 곳으로 눈을 굴렸지만 그 곳에 츠치미카도는 없었다. 츠치미카도는 어느샌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풍경을 떼어내고 있었다.

 

“왜. 에어컨이라도 틀려고?”

 

“으응. 역시 너무 덥다냥-. 풍경을 에어컨 밑에 달아두면 어떨까나-.”

 

“나쁘지않지-.”

 

카미조가 바닥을 더듬자 하얀 리모컨 하나가 손에 닿았다. 카미조는 츠치미카도에게 에어컨 리모컨을 건냈다. 츠치미카도는 적당히 투명테이프로 에어컨에 풍경을 고정시키고는 에어컨을 틀었다.

물론, 딸그랑딸그랑 시끄러운 소리에 금방 떼어낼 수 밖에 없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풍경은 츠치미카도의 손 안에서 얌전히 잠들었다.

 

“여름하면 에어컨이지, 암-.”

 

“좋은 선택이야.”

 

두 사람은 침대와 바닥에 나란히 누워,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차게 식히는 것을 즐겼다. 풍경이고 뭐고, 시원한 게 최고다. 이상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끝-

일 리가 없었다. 애시당초 츠치미카도가 집에 쳐들어왔는데 얌전히 돌아가는 게 더 이상한 이야기였다. 시원함에 스물스물 잠에 빠져드려는 찰나, 츠치미카도가 풍경을 카미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평소와 달리 둔탁한 쇳소리가 풍경에서 튀어나왔다.

 

“불교에서 풍경에는 원래 탄자쿠를 달지 않지-. 여기에 달린 건 탄자쿠처럼 보이지만 탄자쿠가 아니라 쇳조각이잖아.”

 

“엉?”

 

“거기다가 물고기까지. 꽤나 ‘정석’에 가까운 풍경이라고-.”

 

츠치미카도는 풍경소리에 카미조의 집에 들렀다고 했다. 그의 목적은 풍경의 관찰이었던 모양이다. 카미조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츠치미카도의 이야기는 대체로 길고 지루한 경우가 많았고, 이번에도 그럴 예감이 들었다. 틀림없이 좋은 자장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거. 영적 도구였을지도 모르겠는 걸-. 골동품으로 취급되서 경품으로 넘어왔지만 쓸만한 녀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카미양의 오른손에 닿았다면 지금은 그냥 낡은 싸구려 골동품이 맞지만-.”

 

윽. 하고 카미조가 어깨를 크게 움찔했다. 그러고보니 뭔가 그런 낌새가 있었던 기분도 든다. 중요한 물건을 부숴버려 큰 일이 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길 즈음, 츠치미카도의 목소리가 카미조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대부분의 물고기는 잘 때 눈을 감지 않잖아? 거기서 차용해서 언제나 총명하게 눈을 뜨고 항상 수행에 전념하라~ 현재에 깨어있으라~ 하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물고기 모양 장식을 달아놓는다더라-. 또 어디서는 물고기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업을 씻으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도 한다냥-.”

 

“흐응.”

 

전직 음양박사의 불교 강의. 나쁘지 않았다. 어디가서 무료로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겠는가? 물론 강제적으로 들어야 한다면 흥미도는 깎이지만, 그 자체로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카미조는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를 오른손으로 살짝 매만졌다. 츠치미카도는 영국청교도에 속해 있는 것 치고는 다양한 종교에 대해, 그것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중스파이를 하려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물고기모양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야, 카미양. 불교는 생각보다 천문학적으로 이루어져있어. 후란 녀석이 있다면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냥-. 점성학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물고기자리 시대 라고들 해. 춘분점이 황도대에서 하나의 별자리에서 다음 별자리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 대략 2천년정도걸랑. 기원전 1세기부터 지금까지라면 대충 적당하지.”

 

...... 일본어로 말 해줄래?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아무리 자장가라고 해도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기에 듣고는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면 곤란하다. 중간에 후란의 이름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별자리에 대한 마술을 썼던가. 카미조는 기억을 겨우 겨우 더듬어 후드파카의 소녀를 떠올렸다. 이내 그녀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카미조가 눈을 감은 채로 으응? 하고 의문을 표현했지만 츠치미카도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고기자리의 시대는 물고기자리의 "영적" 본성으로 인해 1세기의 청교도와 7세기의 이슬람교, 그리고 기원전 6~4세기에 성립된 불교와 같은 많은 종교들의 발생으로 특징지어지며, 그 능력은 물질계의 경계를 초월해. 물고기자리의 시대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인간 연구가 주된 특징을 이루고 있어.”

 

카미조는 신나게 떠들어대는 츠치미카도의 말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요약해달라고 하면 적당히 잘 요약해주는 녀석이니, 흘려들어도 문제 없겠지. 편한 마음을 갖고 카미조는 그의 말을 흘려듣기로 했다.

 

“몇몇 점성가들은 앞으로도 거의 600년 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 그 이후에, 춘분점은 더 이상 물고기자리와 접해있지 않고 물병자리로 옮겨가게 될 거래-. 아. 점성학적 시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그러니까 물고기자리의 시대의 다음은 양자리의 시대가 아니라 물병자리의 시대다냥.”

 

물병자리. 그러고 보니 자신의 별자리는 물병자리였다. 카미조가 곰곰이 곱씹었다. 그러고보니 생일은 언제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츠치미카도라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카미조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눈을 떴다. 침대 위에서 츠치미카도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부드러운 미소로 말이다.

 

“......뭐하는거야?”

 

카미조의 말에, 츠치미카도의 입꼬리가 잠깐 굳었다. 곧 선글라스 너머의 눈 꼬리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풍경(일본에서는 風鈴. ふうりん)은 잘 못 읽으면 불륜(ふりん)이지.”

 

“어쩌라는거야.”

 

“당신의 옆에 금서목록도 마신도 없는 귀중한 시간-☆. 카미양은 이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릴 생각~?”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람.”

 

“이 때를 노려서 새로운 여자아이와의 두근거리는 만남을~.”

 

파란머리 피어스나 할 정도의 질 나쁜 농담이었다. 카미조가 정색을 하자, 츠치미카도는 금방 분위기를 읽고 말을 멈췄다.

 

“츠치미카도씨? 하시던 말씀 계속 해 보시지요.”

 

“아니-. 내가 잘 못했다냥-...... 카미양이 영 기운 없어 보이길래 화라도 내면 기운이 나지 않을까 해서.”

 

“그럴 리가 있냐.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말어라, 너. 그래서 나에게 풍경 이야기를 한 이유는 뭐야? 내가 영적도구 하나를 부숴버린 바람에, 물병자리가 어쩌고 해서 마술사 녀석들이 쳐들어 오는건가?”

 

“응? 무슨 소리냥.”

 

츠치미카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냥. 카미양의 사교 욕구를 채워주고 있었던건데-. 말하는 변기에다 대고 쓸쓸히 말하는 카미양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말이다냥.”

 

“카미조씨를 심즈 취급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요.”

 

“그치만~ 카미양~. 외로워 보이는 아기 토끼 같았는 걸~.”

 

간드러진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는 츠치미카도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과 마술이 교차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저 평화로운 여름날이다. 카미조가 헛웃음을 짓고 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배고픔 욕구나 채우러 가자고.”

 

“어엉-? 외식인거냥-. 카미양이 왠일이람.”

 

카미조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자신이 걱정되어 찾아와 준 친구다. 날씨도 덥고, 마침 식재료도 떨어졌다. 객식구가 둘(+고양이 한 마리)이나 줄어들다 보니 생활비도 조금 여유가 생겼고, 츠치미카도 녀석도 마이카가 없으니 대충 패스트푸드점에서 밥을 떼울 예정이었을 것이다.

카미조가 지갑을 흔들어 보이며 자신이 한 턱 쏜다는 어필을 하자, 츠치미카도가 야호-하고 양 팔을 들어올렸다.

 

“대신 너무 비싼 건 안돼-!!”

 

“예이예이-.”

 

츠치미카도의 손에서,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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