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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치칸자 / 바다유리_N9님]

짭쪼름한 냄새와 함께, 하얀 파도가 자갈에 부딪혀 바스라졌다. 후덥지근하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닷바람이 피부에 기분나쁘게 달라붙었다. 여름이구나, 싶었다.

숙였던 허리를 펴자 공격적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아찔하고는 저도 모르게 잔뜩 찡그려졌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바닥을 눈 위에 얹고, 칸자키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하늘의 거울이 넓게 펼쳐져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생긴 휴일에 이게 뭐하는 짓이람.’

 

세계에 20명 밖에 없는 성인, 그 중에서도 8위 즈음에 속하는 아마쿠사식 크리스트 처교의 여교황(프리스티스) 칸자키는 혼자서 인적이 드문 자갈 해변에 서있었다. 그녀에게 데이트권유를 하는 남자들도 꽤 있다. 같이 가자고 하면 신나게 같이 덤벼들었을 동료들도 있다. 그런 그녀가 혼자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칸자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남자들에게 교황대리인 타테미야가 그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저희 프리스티스는 학원도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연상의 남자에게 리드 되는 것보단 연하의 남자를 리드하는 타입이라구요.

 

칸자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떠올리는 검은 삐죽머리 소년은 단순히 ‘은혜를 갚아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자갈이 잘그락 밟히는 소리에 칸자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 사람이 찾지 않는 해변일 터였다.

 

“여어-. 누님-.”

 

낯이 익다 못해 가끔은 머릿속에서 떠나지도 않는 녀석이 장난스런 얼굴로 그곳에 서있었다.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녹색 하와이안 셔츠에 푸른색의 선글라스를 끼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칸자키가 저도 모르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뭡니까, 츠치미카도. 갑자기 호출은 아니겠지요.”

 

“하하~ 휴일이잖아, 휴일-. 나도 쉬러 온 것 뿐이다냥-? 누님이 여기 있다니, 의외네-.”

 

“그나저나, 학원도시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냐앙-. 녀석도 휴가철 한 번 쯤은 봐주지 않으려나-?”

 

이걸 참.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칸자키가 눈썹을 찌푸린 채 츠치미카도를 쳐다보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이런저런 커넥션이 있었던 모양이다. 츠치미카도는 자갈들을 사정없이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문득 멈춰서 허리를 숙였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내어, 자갈 속을 헤집었다. 칸자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구부정한 자세로 상체를 일으킨 츠치미카도의 손가락사이에는, 바다의 색을 닮은 둥근 조각 하나가 들려있었다.

 

“내가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당신은 금방 찾아버리네요.”

 

“으응? 뭐야, 누님. 귀중한 휴일에 고작 이런 걸 찾고 있었던거야? 왠일왠일~.”

 

‘고작 이런 거’라니. 칸자키가 아랫입술을 이로 살짝 깨물었다. 그런 칸자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츠치미카도는 또 자갈 속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헤집었다. 작은 바다의 조각이 그의 손가락에 잡혀 올라온다.

불투명한 푸른색이 빛이 통과하며 맑게 빛나자, 칸자키는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츠치미카도가 칸자키에게 손을 펴보라며 낄낄거렸다. 칸자키는 의아해 하며 한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녀의 손에 조심스럽게 푸른색 계열의 알록달록한 조각들을 건내주었다. 어쩌면, 불투명한 얼음조각 같기도 했다. 칸자키가 조각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조각과 똑 닮은 푸른 그림자가 칸자키의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이게 뭐죠?”

 

“보석이다냐-. 아름다운걸 보니까 누님 생각이 나서.”

 

츠치미카도의 말을 듣자마자, 칸자키는 귀 끝까지 열이 오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라면 칸자키의 그런 얼굴을 마주하자 손가락질을 하고 깔깔 웃어댔을 츠치미카도는, 어쩐지 그날따라 얌전했다. 그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칸자키의 손바닥 안의 조각 하나를 집어들었다.

 

“사실은 보석이 아니야. 씨글래스. 바다유리라는 거야-.”

 

츠치미카도는 햇빛에 조각을 비추어보고 있는 칸자키와 똑같은 자세로, 자신이 집은 불투명한 조각을 햇빛에 비추었다. 칸자키의 것과는 다르게 조금 더 녹색에 가까웠다. 칸자키가 조각을 자신의 손바닥에 내려놓자, 츠치미카도도 따라서 조각을 칸자키의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다유리라면, 바다에서 나는 유리인가요?”

 

칸자키의 물음에, 츠치미카도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버린 유리병의 조각이야. 처음엔 삐죽삐죽 날카로웠을거라고-? 그랬던 녀석이 오랜시간 파도에 깎이고 마모되다보니, 어느샌가 둥그런 형태로 바뀐거다냥-.”

 

“그렇군요.”

 

칸자키는 그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이들은 유리병의 색이었다. 이것은 탄산 음료수 병의 조각, 이것은 맥주병의 조각. 하지만 유리조각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이 이들은 모가 난 곳이 없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으응. 그럴 것 같았다냥-. 자갈 해변에 가면 꽤 많다고. 인간이 버린 더러운 양심을, 자연은 받아들이고 그걸 이렇게 만들어 내. 너도 그런 사람이잖아, 카오리.”

 

츠치미카도가 실언이라도 한 듯, 입술을 잘근 씹었다. 칸자키의 목 끝까지, 무언가가 차올랐지만 칸자키는 내뱉을 수가 없었다. 츠치미카도가 이내 싱겁게 웃었다.

 

“그래서 누님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가져왔다냥~.”

 

그래.

별 일 아니었다.

동료가 어느 여름 날에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준 것 뿐이었다.

 

*

 

“얏호~. 또 하나 발견이다냥-.”

 

츠치미카도는 콧노래를 부르며, 쪼그려 앉은 채 자갈 더미에서 바다유리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칸자키는 혀를 차고 제 자리에 앉아버렸다. 울퉁불퉁한 자갈에 부딪혀 조금 아팠지만, 참을 만 했다.

 

“누님은 요령이 없구만-, 요령이-.”

 

기본적으로 성인은 행운을 지닌 채 태어난다. 그 때문에 칸자키는 제 주변의 사람들이 불행해 졌다고 믿으며, 자주 속앓이를 했다. 츠치미카도는 그런 그녀를 자주 위로 해주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조용히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기만 했고, 칸자키 또한 그에게 아무런 푸념을 늘어놓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가 바다유리를 찾지 못한 것 또한 하나의 행운의 조각일 지도 모른다. 이얍- 소리를 내며 투수의 자세로 자갈 하나를 바다에다 집어던지는 츠치미카도를 보며, 칸자키가 숨을 삼켰다.

 

“제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오신겁니까?”

 

“그럴 리가~. 나에게는 추적할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용. 요전번에 이런저런 일로 또 거하게 상처가 터져버려서-. 이번에는 마이카한테 바다 구경이나 시켜줄까 하고 말이다냥-. 좀 있다가 마이카한테 인사라도 하러 가자고-? 여기까지 오는 게 피곤했는지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날 거래-.”

 

생글거리는 얼굴로 츠치미카도가 칸자키에게 다가와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그때처럼, 칸자키의 손에 바다유리 몇 조각을 건네주었다. 예전에 받았던 것 보다는 조금 지저분해 보였다. 칸자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츠치미카도가 자신없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지난번엔 깨끗하게 씻어서 준 건데 이건 방금 막 채굴해낸 싱싱한 거니까-. 잘 챙겨가서 깨끗하게 씻어서 보관하라냥-.”

 

그러고는 살포시 주먹을 쥐어준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츠치미카도의 마음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적이 있다. 그는 영국 청교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음양술을 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들어간 학원도시에서는 고작 레벨 0 판정.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세상의 더러운 면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했다.

칸자키는 그의 날카로움을 없애고 싶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적어도 부드러운 것으로 감싸주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항상 웃고 있는 그였기에 더욱 더 난감했다.

칸자키가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샌가 그는 둥글어져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보였고, 농담이나 장난을 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원인은 의붓 동생이었다던가, 카미조 토우마라던가. 원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깨져버렸던 그의 마음이 다시 둥글어졌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선물 해 줄 생각이었는데.’

 

별거 아닌 유리조각일 뿐이다. 길거리에서도 볼 수 있는 유리조각일 뿐이었다. 그 별거 아닌 작은 선물을 내가 직접 찾아서 너에게 주고 싶었다. 특히나, 더 이상 학원도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얘길 들었기에, 간접적이게나마 바다를 떠올릴 수 있는 선물을, 바다의 조각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

 

칸자키가 손에 쥐어진 바다유리와 츠치미카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츠치미카도는 뭐가 문제냐는 듯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래. 별거 아니다. 이 감정 또한, 별거 아닌 존재였다.

칸자키는 츠치미카도의 손에 다시 바다유리를 건내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주는 선물로 해주세요.”

 

“흐응? 더러워서 받기 싫다 이거야-?”

 

“그럴리가요. 아름다운 걸 봤더니, 당신 생각이 나서요, 모토하루.”

 

칸자키가 싱긋 웃자, 츠치미카도도 그녀를 따라 미소지었다. 츠치미카도는 비꼬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름다운 프리스티스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이구만유-.”

 

“아하하하.”

 

꼴이 우스웠다. 칸자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고, 츠치미카도도 뒤따라 경박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츠치미카도가 털썩하고 칸자키의 옆에 앉았다. 곧, 그는 자갈이 아프다며 불평을 내뱉었다. 츠치미카도는 자신의 주먹을 펼쳐, 칸자키가 다시 쥐어준 바다유리를 꺼내어 보였다. 손가락으로 바다유리의 끄트머리를 톡 건드린다.

 

“누님-. 여기 위에다가 구멍을 내서 목걸이로 만들 수도 있걸랑-.”

 

“그런가요?”

 

신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츠치미카도와 어깨가 닿았다. 츠치미카도도 칸자키도, 굳이 닿은 어깨를 떨어뜨리려하지 않았다. 칸자키는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 마다 욱신거리던 것은, 바다의 물결이 잔뜩 품어 가져가 버렸다. 남아있는 것은 바다 위에 비친 햇빛과도 같은, 반짝거림이었다. 칸자키가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머리를 툭, 가져다 대었고, 츠치미카도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는 파도소리에 쉽게 묻혀버릴만큼 잔잔한 목소리로, 만나지 못한 동안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늘어놓았다.

 

별거 아닌 유리조각 하나에, 과연 지금 이 순간이 담길 수 있을까.

이 작디 작은 바다의 조각에, 너와 나의 추억이 담으려 했다간 넘쳐 흘러버리는 게 아닐까.

어찌되었던, 네가 나를 떠올려 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짭쪼름한 냄새와 함께 하얀 파도가 자갈을 끌어안았다가, 이내 그들을 놓아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바람이 피부 위를 스쳐 지나갔다. 여름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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