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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모츠치 / 아지랑이_N9님]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받은 아스팔트 위로 세상이 일렁거린다.

머리 위로는 섭씨 6000K 로 타오르는 붉은 태양이, 발바닥 아래로는 자칫하면 화상을 입을 지도 모를 만큼 뜨거운 아스팔트가 세상을 녹여 삼켜버릴 기세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츠치미카도 모토하루는 짐꾼 신세다.

 

“젠장-. 쿠모카와, 적당히 하란 말이다냐-.”

 

“선배는 어디갔니, 선배는? 제대로 부르렴.”

 

배가 훤히 드러나는 세라복을 입고서도 혼자서 휴대용 선풍기로 땀을 식히는 카츄사를 쓴 선배님도 더위에 지친 표정이었다. 평소였다면 팔꿈치로 배를 한 대 맞았겠지만, 그녀는 그럴 기력조차 없어보였다. 둘은 며칠 후 있을 야외 연설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현장 조사라니-. 휴식이 필요하다냥, 특히 빵빵한 에어컨이.”

 

“이런 날씨일수록 더욱 더 현장 조사가 필요한 법이다만.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그러니까 체어맨이다만, 현장을 모르면 체어맨을 할 수도 없지. 어쩐지 요즘 말단 녀석들은 못 믿겠어. 조사가 엉망이란 말이야? 대충대충 하는거 같고. 내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된다고. 그리고 이 더위에 학생들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열사병의 위험에 대해서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만? 그 실험대상이 네 녀석일 뿐이다만.”

 

“잔인하구만-.”

 

땀이 턱을 타고 뚝뚝 흘러내린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린 땀이 눈을 찌르려 하자, 츠치미카도가 선글라스를 살짝 올린 후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눈 안으로 조금 들어가 따끔거렸다. 선글라스 밖의 세상은 과도한 자외선이 넘쳐났다. 상당히 오랜만에 맨 눈으로 정오의 햇빛과 마주한 츠치미카도가 신음소리를 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앞서가던 쿠모카와가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연설회장과 정거장의 거리가 너무 멀어. 윗대가리 녀석들은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정거장에서 연설회장까지 천막이라도 설치하라고 전달해야겠어. 예산을 빼돌려 뭐라도 해먹을 생각이겠다만, 그렇게는 못내버려두지.”

 

사실 정거장과 연설회장의 거리는 거리만 따지자면 그리 멀지 않다. 엄청난 더위에 발걸음이 무거워진 쿠모카와가 그렇게 느낀 것 뿐이겠지만, 분명 쿠모카와만이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풍기를 들고 있는 쿠모카와가 이리 느끼는데, 쿠모카와의 짐을 잔뜩 짊어진 츠치미카도는 어떻겠는가. 츠치미카도가 짊어진 검은 가방들 안에는 라이플과 골프우산과, 갖가지 탐색기구가 들어있었다. 이 더위에 하나만 들기에도 무게가 만만치 않은 물건들이었다. 츠치미카도는 쿠모카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흐음.”

 

문득 쿠모카와가 멈춰섰다. 츠치미카도가 잔뜩 경계를 품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몸짓과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경박한 남고생의 것으로 느긋하게 쿠모카와에게 말을 건다.

 

“뭐야-, 뭐야-. 뭐라도 발견한 거냥-?”

 

“의안 안쪽으로 땀이라도 들어간건가. 따끔거리는데.”

 

의안. 작년 겨울 언저리에 츠치미카도와 쿠모카와는 상당히 질척거리는 싸움에 휘말려 들었었다. 인적자원 프로젝트인가 뭔가 였던가. 단순 비유가 아닌,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운 대결에서 츠치미카도가 그녀의 한쪽 눈알을 날려버려서 그녀는 학원도시 특제 의안을 착용할 수 밖에 없었다. 별로 그 사건에 츠치미카도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는다. 책임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 대가로 그녀는 반년이나 그를 부려먹고 있으니, 그런 마음은 진작에 내려 놓았다. 애초에 느낀 적도 없지만. 츠치미카도는 경계를 풀고 혀를 찼다.

 

“뭐, 학원도시 제품이 그리 부실할 리가 없잖냥-. 그냥 착각이겠지. 착각. 자-. 연설회장이 얼마 남지않았답니다, 얼른 올라가버리자고-.”

 

“착각이 아냐, 정말로 아프다만.”

 

쿠모카와가 가만히 멈춰 선 채로 눈을 부비적 거렸다. 츠치미카도는 한숨을 푹 내쉬고, 길바닥에 조심스럽게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닿은 가방은 덜그럭 거리며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츠치미카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으로 축축해진 자신의 손을 닦고, 쿠모카와에게 다가갔다.

 

“어디 보자-.”

 

쿠모카와의 얼굴을 살짝 감싸쥐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체액이 눈가 주변에 맺혀 있었다. 더위에 달아오른건지, 눈가를 강하게 부벼서 그런건지, 눈가에서부터 볼까지 그녀의 얼굴은 불그스레 했다. 츠치미카도가 키득거렸다.

 

“워어? 울어-? '그' 쿠모카와가 지금 내 앞에서 우는 거냥-?”

 

“멍청아, 시끄러워. 이건 땀이다만?”

 

쿠모카와가 짜증을 내며 츠치미카도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서 떼어내려했지만, 힘에서는 츠치미카도가 앞섰다. 쿠모카와는 어정쩡하게 얼굴을 붙잡힌 채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츠치미카도는 쿠모카와의 의안을 빤히 쳐다보고,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구만-. 일단 땀인지 눈물인지 솔직하게 얘기해보라고-.”

 

“땀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거냐, 이 멍청이는?!”

 

“뭐야뭐야-. 솔직하지가 못하구만-. 손수건이나 티슈같은 건 있어?”

 

쿠모카와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고개를 젓자, 츠치미카도가 킬킬거리며 주머니에서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런가-. 내 땀 닦던거라 기분 나쁘겠지만 이거 밖에 없으니까 좀 참아. 좀 있다 화장실가서 세수라도 하던가-.”

 

으엑-,하고 쿠모카와가 질색했지만, 지금 당장 쿠모카와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츠치미카도는 손수건을 뭉쳐 쿠모카와의 눈가 주변을 콕콕 찍어누르듯 눈물을 닦아냈다. 츠치미카도에게 얌전히 잡혀 있던 쿠모카와가 투덜거리듯 한마디 내뱉었다.

 

“한낱 양아치같은 네 놈이 손수건이라니, 상당히 의외인 모습이다만.”

 

“으응-? 마이카가 챙겨준거야-. 너는 내 동생에게 고마워하라고-?”

 

“아침마다 네 녀석의 옷 입는걸 도와주는 의붓동생에게 별로 감사를 표하고싶진 않다만.”

 

어떻게 알고 있는거람. 츠치미카도가 후,하고 눈에 바람을 불어넣자 쿠모카와가 저도 모르게 눈을 찔끔 찌푸렸다. 눈물이 조금 흘러나오자 의안 안쪽의 따끔거림이 사라졌다. 츠치미카도가 쿠모카와의 얼굴을 놔주자, 쿠모카와는 신경질을 내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츠치미카도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무거운 짐덩이를 챙겨들었다.

 

도착한 연설회장은 원래 공원의 한 복판이었다. 넓은 공터에 무대 하나를 놓고,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을 위한 작은 자리 너머로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배치되어있었다.

 

“호오.”

 

쿠모카와가 탄식을 내뱉었다.

 

“다 녹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자빠지기나 하라지, 빌어먹을 이사회놈들.”

 

“후냥-. 정작 당일날 이사회놈들은 장갑차 안에서 나오지도 않을 거아냐?”

 

“말이 그렇단거지.”

 

(신) 이사장과 오야후네 모나카의 노력의 끝에 올해 여름 ,학생들에게는 처음으로 작은 선거권이 생겼다. 고등학생 부터 갖게되는 선거권이었지만, 윗선에서는 천천히 중학생까지 범위를 늘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감히' 모르모트인 능력자 나부랭이들이 선거권을 갖고 자신들의 결정에 왈가왈부하는게 싫은 모양이었다. 불만을 토로하며 어떻게든 학생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지않으려는 수를 썼다. 이 여름날, 선거에 관련된 연설을 야외-그것도 사람이 잘 찾지도 않는 공원에서 실시하도록 강행한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멍청한 놈들은 다 뒈졌으면 좋겠다만.”

 

“흐음-.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해-.”

 

한때 윗대가리를 칠 목적으로 함께 행동했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인 이사장이 꽤나 노력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사회생활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학원도시의 제 1위라 할지라도, 수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습득한다 하더라도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노련함이 부족하다. 당시의 그였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행하려 했겠지만, 막상 이사장이라는 직위에 오른 그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부족한 녀석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모자라구만.”

 

“날 옆에 두고 누구 얘길 하는건지 궁금하다만?”

 

“얼씨구, 질투인가냥-? 너한테 질투받아봤자 별로 기분이 좋진 않다만-.”

 

쿠모카와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츠치미카도가 매고 있는 가방을 한 손으로 잡아 끌고는, 지퍼를 열었다. 쿠모카와의 손에 의해, 둔탁하고 거대한 검은 색의 골프 우산이 가방에서 잡혀나왔다. 쿠모카와는 팡, 소리를 내며 우산을 폈다. 커다란 그늘이 쿠모카와의 상반신을 덮는다.

 

“너는 입 다물고 탐색기계나 조립 해. 나는 이 주변에 저격하기 좋은 건물이 있는지 찾아볼테니까.”

 

“네-네- 다냥-.”

 

츠치미카도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보이스카웃이 조립식 텐트를 만지작 거리는 마냥 능숙하게 검은 기계덩이를 조립해나간다. 가만히 앉아서 기계를 조립하자니, 이따금씩 후덥지근한 바람이 살랑거렸다. 츠치미카도는 조립하던 손을 멈추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곧, 주변을 빙글 둘러본다.

우거진 나무들은 영롱한 녹색빛을 자랑하고, 매미들은 지치지도 않고 울어제낀다.

저 멀리선 전철이 지나간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이따금씩자동차 클락션 소리도 들린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비행선에서는 내일의 날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렁거리는 아지랑이 너머로 검은 골프 우산을 들고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는 쿠모카와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평화로구만.

 

 

아마 연설 당일에도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연설은 평탄하게 흘러갈 것이고, 그 누구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평생을 바래왔던 평화는, 이런 걸지도 모른다. 여태 자신은 네세사리우스의, 학원도시의, 더 나아가서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굴러가는 톱니바퀴였지만 지금의 그는 전장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있는 상황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갔다간 (전)이사장+(전)아크비숍 이라는 기괴한 조합의 손에 의해 목숨이 노려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지만, 덕분에 그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동안 그에게 있어서 평화는 아지랑이처럼, 또는 신기루처럼 눈에 아른거리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그가, 아지랑이 속에 있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머릿속을 잠식해간다.

 

“뭘 멍하니 있는거니, 츠치미카도? 열사병의 짐조가 보여? 쓰러지기 전에 네가 몇 분정도 햇빛 아래에 있었는지 말하고 쓰러졌으면 한다만. 그 기록을 갖고 파라솔을 설치하던 천막을 설치하던 선풍기나 얼음물을 배부하도록 할테니까 말이야.”

 

아지랑이 너머에서 쿠모카와가 소리쳤다. 음. 저 녀석만 없으면 아주 평화롭겠구만. 츠치미카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쿠모카와는 츠치미카도가 멀쩡한지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는, 다시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츠치미카도도 감상에 젖어있는 것은 그만두고 조립에 집중하기로 했다. 얼른 일을 끝내고 쿠모카와에게서 벗어나, 기숙사로 돌아가 메이드 여동생과 함께 에어컨 바람이나 쐬야겠다, 싶었다.

 

해가 살짝 기울었을 즈음, 쿠모카와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짐을 챙겨 공원에서 벗어나면서 쿠모카와는 머릿속을 정리하듯 중얼중얼 거렸다.

 

“저격 포인트가 될만한 부분도 확실히 잡았고, 건강한 피험체는 열사병 증세가 없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구급차는 상시 대기하도록 해야겠다만. 별 생각 없이 장소를 지대가 높은 곳으로 잡은게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한 흔적이 보이는 걸. 조금은 안심이다만.”

 

“하앙-. 선배님, 저 너무 어지러워용-.”

 

“죽어.”

 

츠치미카도가 이마에 손을 얹고 휘청거리며 콧소리를 내봤지만 쿠모카와는 별 다른 반응조차 해주지 않았다. 괜한 오기에, 츠치미카도가 순정만화의 병약한 여주인공 처럼 털썩 쓰러져 앉아보기도 했지만-.

 

“선배님이 부축해주면 좋겠-, 앗뜨, 아뜨드뜨뜨뜨뜨뜨!!!”

 

츠치미카도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뒹굴었다. 애시당초 계란 하나를 톡 까놓아도 금방 후라이가 될 만한 온도의 바닥이었다. 쿠모카와는 낄낄거리면서 바닥을 나뒹구는 츠치미카도를 비웃었다. 곧, 손바닥과 정강이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츠치미카도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네 그 미미한 능력 덕분에 별다른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만?”

 

“내 능력은 금강불괴가 아니라 육체재생이거든? 안 아픈게 아니란 말이다냥-.”

 

츠치미카도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을 탈탈 털었다. 온몸의 혈관이 터진 적도 많고 총에 맞아 강에 거꾸로 쳐박힌 적도 있는 주제에, 이 작은 상처가 뭐라고 따끔거리면서 눈물까지 났다. 쿠모카와는 보기드문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휴대용 선풍기를 츠치미카도에게 건냈다.

 

“식당에 도착하면 얼음물을 달라고 할테니 그때까지 이거라도 하고 있던가. 네가 원한다면 짐도 조금 들어 주겠다만.”

 

“뭐야-. 왠일이람-? 애초에 네 짐이라고. 자자- 얼른 받아-...... 아니, 식당? 이제 끝, 모두 해산~이 아닌거냥?”

 

신나게 쿠모카와에게 가방을 떠넘기던 츠치미카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 상태로 기숙사로 달려가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귀여운 의붓여동생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특제 요리를 먹을 예정이었다만, 쿠모카와의 한마디에 에어컨도 의붓여동생도 특제요리도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다.

 

“나란 분께서 네 녀석을 위해 밥을 사주겠다는데, 불만이야? 이것도 일의 일환이다 생각하고 얌전히 따라오기나 했으면 좋겠다만.”

 

쿠모카와는 츠치미카도에게서 가방을 빼앗아 자신의 등에 짊어졌다. 그리고는 별 말 없이 정거장으로 발을 옮겼다. 츠치미카도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힘들게 가라앉히고, 미적거리며 쿠모카와의 뒤를 따라갔다.

쿠모카와가 향한 곳은 꽤나 고급진 식당이었다. 카미조나 츠치미카도 같은 무능력자(레벨 0)들은 상상도 못할 가격의 호화로운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가게의 입구에서, 간판과 문을 번갈아 쳐다보던 츠치미카도가 눈을 꿈뻑거렸다.

 

“......”

 

“뭐가 불만이야?”

 

“아니이-. 쿠모카와, 너 이런 데 자주 오는거냥?”

 

“뭐, 그렇지. 카이즈미에게 보수를 꽤나 두둑하게 받으니 문제 없다만?”

 

“흐응~.”

 

데이트 스폿에 밥을 자주 먹으러 온단 말이지. 괜스레 속이 간지러워졌다. 츠치미카도가 눈썹을 찌푸렸다. 틀림없이 그녀는 혼자서 또는 그녀의 여동생과 밥을 먹을 테지만 남자와 밥을 먹는다는 가정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츠치미카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카미조 토우마를 좋아하는 주제에 다른 남자들과 이런 곳을 드나든단 말이지. 물론 츠치미카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츠치미카도의 미심쩍은 반응이 불편한지, 쿠모카와가 인상을 찡그렸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츠치미카도의 한쪽 팔을 붙잡고, ‘뭔데, 무슨일인데?’ 하는 눈빛을 보내며 안절부절 못하는 쿠모카와. 고급 레스토랑 입구 앞에서 불만스러워 하는 남자의 한쪽 팔에 매달린 안달난 여자.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한 쌍의 연인으로 볼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불행한 남자고등학생이 목격하고야 말았다.

 

“하?”

 

“어라-.... 선배랑 츠치미카도? 생각지도 못한 조합인걸.”

 

쿠모카와는 아무렇지도 않은 평탄한 얼굴로 카미조에게 인사하려 했다. 곧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깨닫고 그녀는 황급하게 츠치미카도의 팔에서 손을 떼어냈다.

 

“카미조-. 이,이건 말이야.”

 

총괄이사회의 브레인답지 않게 허둥거리는 꼴이 우스웠다. 츠치미카도는 의문으로 가득한 카미조의 얼굴과 당황스러워 하는 쿠모카와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카미양-. 그게 말이다냥. 선배님이 여길 한번 꼭 ‘같이’ 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둘이 이런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하는 사이였어? 전혀 몰랐어. 뭔가 속은 기분인데-.”

 

나를 속이다니! 카미조가 분하다는 목소리를 내자, 쿠모카와가 눈을 매섭게 뜨고 츠치미카도를 노려보자, 츠치미카도가 냥-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아니,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문제라고-? 작년 여름방학 마지막 날에 토키와다이의 아가씨한테 붙잡혀서 가짜 연인행세를 했잖아-? 이건 그런거, 그런거.”

 

하? 하고 쿠모카와가 인상을 풀자, 츠치미카도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빠진 얼굴이 볼 만 했다. 츠치미카도는 쿠모카와의 등을 툭 밀었다.

 

“카미양, 보아하니 또 점심은 아직이겠구만? 기왕 이렇게 된거 선배님이랑 한끼하라구-. 무려 비싼 이 레스토랑에서~ 선배님이 한턱 쏘신다고 한다냥~.”

 

“네, 네 녀석, 무슨 소릴......”

 

쿠모카와가 어버버 하는 사이에, 츠치미카도는 쿠모카와에게서 가방을 빼앗아 들고는 달려나갔다. 갈 곳을 잃은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츠치미카도는 혀를 삐죽 내밀고는, 아스팔트를 내달렸다. 꽤나 멀리서 흘끗 쳐다보니, 두 사람은 어색하게 대화를 조금 주고 받다가 레스토랑안으로 들어갔다.

츠치미카도에게 있어서는 이 상황이 일석이조였다. 카미조와 쿠모카와를 붙여둠으로써 자신은 쿠모카와와의 어색한 식사자리에서 벗어나고, 기숙사로 돌아가 마이카와 함께한다! 응, 좋은 결말이었다.

검은 가방들을 고쳐 매고, 츠치미카도가 발을 내딛었다.

 

여전히 뜨겁고 달궈진 세상이었지만, 아지랑이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결국 열로 인한 공기의 움직임과 착시현상이고, 바람이 불면 사라져 버린다. 중요한건 오늘의 날씨가 얼마나 덥고, 또 그로 인해 피해 입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예측이다. 아지랑이같은 평화라니. 그런 감상에 젖어있기에는 더 이상 츠치미카도는 가진 것이 없다.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계획해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제 딴에는 땀을 식혀보겠다며 열심히 불어온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츠치미카도는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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